이 책을 읽으면서 우메다 모치오의 <웹진화론>이 많이 떠오릅니다.

비슷한 점들이 많은 이유는 두 지은이가 웹 2.0 이라는 동시대를 살고 있고, 또 이를 비교적 낙관적으로 바라본다는 점 때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아래에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간략히 적어 보았습니다.

 

비슷한 점

다른 점

인터넷에 대한 우려. 불신 보다 웹 2.0 에 대한 낙관적 견해

미디어 2.0 의 개념 설정

롱테일 현상과 구글 애드센스에 대한 긍정적 견해

아프리카 TV, 오마이뉴스, 네이버, 다음블로거 뉴스, 등 우리 나라의 사례 제시

1인 미디어 시대를 여는 블로그에 대한 기대

미디어 2.0 에 발맞추어 변화했으면 하는 언론의 방향 제시

파워 블로거의 개인 브랜드화에 기대

신문사와 포털사이의 관계 모색

 
<미디어 2.0>을 읽으면서 미디어 산업과 광고산업 그리고 포탈사이트와 신문사의 관계에 대한 꼭지들은 이해가 어려웠음을 고백합니다.

그 중에 관심이 가는 것은 블로그에 관한 꼭지였습니다.

그래서 아래에는 블로그 입문자인 제가 새겨 듣고 싶은 지은이의 충고를 요약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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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관심을 끄는 블로그 글쓰기의 유형이라던가, 소통과 공유를 위한 블로그 글쓰기의 유의할 점, 블로그 글의 발행 의 의미를 대자보 쓰기에 비유한 설명 들은 저 같은 초보 블로거 독자를 위한 친절한 설명이고 비유였습니다.


기존 언론의 '의제설정 권력의 분산'의 시대에 어떤 블로거가 되고 싶은가?

 
저 스스로에게 묻는 물음입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아 봅니다만, 어떤 글을 쓸 지, 어떤 형식으로 쓸 지, 독자 타겟팅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 지 등, 아직도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지은이의 말대로 미디어 2.0 시대는 소통과 그로 인한 수정이 특기인 만큼 제가 한 번 설정한 목표도 수정해야 할 것이고, 심지어는 블로그라는 버스에서 내려 다른 것으로 갈아타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읽고 쓰고 생활하면서 자주 또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P.S 이 글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서평단 모집 서평 입니다.

Posted by 로처

. 무한 성공의 시대에 등잔 밑

 

우리는 지금 자유와 평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영웅만이 실패할 수 있다는 고대와 중세의 봉건적 신분질서를 깨뜨린 시대 말이죠.

 

우리는

<Just do it>, <Impossible is nothing>의 시대에 살고 있고,

<스타킹>, <도전 슈퍼모델>과 같은 방송을 보면서 지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같은 성공방법을 다룬 책들이 넘쳐나고,

보편화된 공교육의 수혜로 높은 대학진학률을 보이는 곳에 살죠.

 

누구에게나 성공의 가능성은 열려있는 듯 합니다.

<꿈은 이루어진다>처럼 무한 성공의 시대 무한 가능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공에 집착하고 열광하면서, 실패에 침묵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실패에 전염될까 전전긍긍하며 실패를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로 꽁꽁 묶어서 마음 속 깊은 곳에 처박아 둡니다. 그리고 실패는 거꾸로 마음을 꽁꽁 묶습니다. 두려움 그리고 그 이상의 것으로 말이죠.

 

지은이(크리스티아네 취른트)는 무한 성공의 시대는 필연적으로 실패도 많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는 보다 나은 실패를 위해 실패를 봉인에서 풀고 들여다 볼 것을 권합니다.

 

이제 아래의 사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지은이가 말하는 실패를 들어보겠습니다.

실패의 개념정의와 역사적 인문학적으로 실패의 인식변화를 들여다 본 후, 왜 우리는 실패를 살펴보았는가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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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란?

 

1. 실패는 한계상황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실패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합니다.

역사적 사실과 인문학, 소설의 자료를 들어 친절하게 얘기해 주죠.

 

그 중의 두 개를 소개합니다.

첫째가 한계상황으로써의 실패

둘째가 기회로써의 실패 입니다.

 

한계상황으로써의 실패는 성공한 사람들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로써의 실패 보다는 너무도 어렵고 앞이 캄캄한 실패를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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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회로써의 실패, 그 이중성

 

둘째 기회로써의 실패에 대해 지은이는 아무도 받고 싶어하지 않는 위로이며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패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 태도도 보입니다.

모순이라는 생각에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만, 가능성으로써의 실패에 집중되어 있는 현대의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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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의 변화


고대

중세

르네상스

계몽주의

현대

* 오이디푸스와 오디세우스의 예

* 영웅만 실패가 가능한 시대

* 인간과 운명의 투쟁

조상에게 물려받은 신분과 삶이 있을 뿐 실패는 없는 시대

가능성의 발견과 실패할 가능성에의 노출

* 이성의 재발견

* 성공과 진보에 대한 낙관

* 실패는 성공의 그림자가 되어 내면으로 침잠

* 보헤미안, 다다, 버지니아 울프, 찰리 채플린

* 실패의 매력 발견과 실패를 예술로 승화

* 실패의 금기 완화 그리고 실패의 두려움 감소

 


. 실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제가 이해한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영웅만이 실패가 가능한 고대와 실패도 없고 가능성도 없는 중세를 넘어서 이미 많은 가능성과 더불어 실패의 가능성도 많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실패가 늘 우리 곁을 맴도는 시대임에도 실패를 개인의 맘 속에 가라앉힌 채로 속 끓이고 있기도 합니다.

 

이 시대 실패에 대처하는 자세는,

우선 갖가지 모순으로부터 자기를 세우고, 그 후에 꽁꽁 묶어 맘 속에 가라앉힌 실패를 끄집어 내서, 들여다 보고 친해지고 수정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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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다 성공적인 실패, 보다 세련된 실패, 실패의 민주화를 위해 또 다시 시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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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


1. 문제제기

 

이 책은 1548년에 쓰여져 독재자나 폭군에 예속되어 있는 시민들에게 고하는 글입니다.

군부독재가 끝난 지금의 한국에는 독재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로또의 확률일지라도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사안을 눈감고 귀막은 채,국민의 소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은 여전히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라 보에티는 이 책에서 문제제기를 합니다.

 

첫째, 왜 인민은 스스로 자유를 버리고 복종과 노예의 처지를 선택하는가?

둘째, 무엇이 자유롭게 살려고 태어난 존재로서의 인간을 타락하게 만들었는가?

도대체 무엇이 인간들로 하여금 원래의 존재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게 했으며, 원래의 고유한 존재를 되찾으려는 내적 욕구마저 깡그리 파괴해버렸는가?

 

2. 자발적 복종의 원인

 

라 보에티는 자발적 복종, 즉 자발적인 노예상태에 대해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자유를 맛보지 못한 사람은 자유를 모르고, 자유에 대한 열망이 없다면 못함은 당연하다.

둘째, 사람들의 내면에 자유에 대한 열망보다 노예화를 갈구하는 열망이 가득차 있는 경우도 있다.

셋째, 자유를 포기하고, 순응하는 노예화 습관과 교육이 원인이기도 하다.

넷째, 도박, 스포츠, 빵과 포도주 제공, 등 우민화 정책도 원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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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발적 복종의 사슬 끊을 방법

 

이런 원인에 대해, 폭군이나 독재자로부터의 노예적 예속상태를 끊고,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간단히 제시합니다.

 

첫째, 자유에 대한 적극적 열망을 갖는 것이 시작입니다. 수동적인 내면의 개인적 소망이 아닌 '적극적 열망'이 중요합니다.

둘째, 독재자(폭군)을 지지하지 않는 것

셋째, 교육을 통해 자유의 싹을 잊지 않고 계발할 것

 

원론적인 해답이지만,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이 되는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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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들에 대한 물음

 

부와 관직, 또는 명예를 얻기 위해 폭군에 아부하고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을 돕는 사람들에게 라 보에티가 묻습니다.

'무엇을 위한 삶인가?'

'행복한가?'

'자신을 버리고 무엇을 얻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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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

정치교회(김지방) & 미션(The Mission)

 

 이 책을 읽고,

무슨 글을 써야 좋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교회가 비판을 받을 만한 일이 있으면, 일부이거나 소수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책임을 피하려는 말일 뿐입니다.


교회의 머리 되는 소수가 잘못을 하고,
다수가 침묵한다면, 이는 소수일 수가 없습니다.

한기총의 행보를 보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각자의 정치성향에 따라 옥석을 가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느 교회가 언제 침묵하고, 언제 정치적 발언을 하는지.
어느 목사가 언제 침묵하고, 언제 세상 짐을 지려고 하는지 알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신도들도 신의 말씀을 듣는 것과, 정치토론의 자유를 가지는 것이 상반된 것이 아니라는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면 합니다.

읽었음에도 제가 아는 바가 적어서,
잘 정리하셨다고 생각하는 바람구두님의 블로그를 링크함으로 책 이야기는 마무리 합니다.


바람구두 님의 리뷰


 

대신, 많은 분이 보셨을 영화 미션(The Mission)을 소개할게요.

 

영화는 두 신부가 등장합니다.

 과라니 부족의 마음을 음악으로 열어 선교를 시작한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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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과라니 부족 사람을 대상으로 한 노예사냥꾼 로드리고 멘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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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로드리고 멘도자는 연인과 동생의 삼각관계로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고, 죽지 못해 살다가 과라니 부족민들에게 용서받고, 과라니 부족을 돕는 삶을 사는 신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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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참 행복한데,
아시다시피 영화는 여기서부터 후반전 시작입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권다툼의 희생으로 과라니 부족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 때 가브리엘 신부와 로드리고의 대응방법이 갈리게 되죠.

 

가브리엘 신부는 비폭력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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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는 폭력투쟁을 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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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차이는 보시듯, 투쟁방법의 폭력성 유무 입니다.

둘의 공통점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족민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과 함께 했다는 점입니다.

둘 다 목숨을 다해 함께 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엑스랑 유사하다고 볼 수 있나요?

 

제 글이 좋은 영화 망치는구나 하는 자괴가 들기도 합니다^^;

결론도, 논점도 없는 우왕좌왕하는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점점 나아지길 기도해 주세요. ^___^

Posted by 로처
가자에 띄운 편지-교사라면…..

Ⅰ. 리뷰를 쓰기 전에

저는 한 때 선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도 있었지요.
지금은 선생이 아니지만, 선생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어 보게 되더라구요. 그 몇 가지 생각들을 옮겨 보려고 합니다.


Ⅱ. 하고 싶은 말고 담고 싶은 말


1. 질문없는 대답과 대답없는 질문

며칠 전에 윤구병 선생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 선생이 ‘질문없는 대답’을 칠판 한 가득 채우는 것은 무의미 하다는 내용의 말씀이 있었지요.
아이들의 삶에서 소중한 것, 알고 싶은 것, 세상을 살아 가는데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것을 질문하게 되고 그에 대한 답을 선생이 해주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죠. 그렇지 않고 아이들의 질문이 없는 상태로 선생이 혼자의 생각을 칠판 한 가득 채우고 주저리 주저리 떠드는 것은 의미가 없노라고 말이죠.

이 책의 앞부분에 ‘탈 레빈’의 학교에서 20 세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학생이 묻고 선생님들이 대답을 합니다. 재미가 있어서 옮겨 봅니다.

“20세기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사망자, 항생제, 그리고 컴퓨터로 충만해진 거야….”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의미 부여한 것들에 대해 앵무새처럼 주워섬기지 않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실은 제가 그런 경향이 있거든요 …….

세계 발전과 인류공영,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고민은 안해도 좋으니 지금처럼만 스스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 휴전중인 한반도와 가자지구

“여기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주 과격하게 대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협조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런 혐의 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


전쟁과 살육의 분쟁이 심해지면, 중간영역이나 제3의 길은 보이지 않게 되겠죠. 모두에게 이쪽 아니면 저쪽의 둘 중 하나의 강요된 선택만이 있을 것입니다.

최인훈 작가의 ‘광장’이나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에서 보는 것처럼 말이죠. 한국도 이 상황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주적은 북한이고, 이것이 국시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쟁점이 되는 휴전 5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죠.

종전이 아닌 휴전이라는 아리송한 개념 때문에 더 그런가 봅니다. 서해교전으로 인해 안타깝게 산화한 젊은이들의 충정과 애국이 통일을 위한 정책들과 대립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데 말이죠.

3. 일반화 속의 개인

한의학에서 사람의 몸을 하나의 작은 우주라고 하던가요?
이 책의 중간 중간에서 지은이는 이스라엘 또는 팔레스타인 이라고 하는 전체의 묶음으로 서의 이해가 오히려 그 또는 그들에 대한 몰이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단수 이상의 의미를 지닌 그들을 복수로 일반화 시켜서 이해하는 것에는 항상 예외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알아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관련된 내용을 인용해 봅니다.

P 72. [ ‘나, 너, 그’ 하는 식의 단수는 존재하지도 않고, 그냥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는 복수만 있는 거지. 불쌍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아니면 나쁜 팔레스타인 사람들 하는 식으로 경우에 따라서 바뀌기만 할 뿐 바로 그 복수만 늘 존재하는 거지.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하나+하나+하나’가 아니라 늘 400만인 거야. 그러니 사람들은 민족을 통째로 등에 지고서 살아가는 것이고. 무거워. 무거워. 무거워 등이 뭉개질 것만 같아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져 버리지. ]



4. 개인적으로 몸과 맘에 새기고 싶은 것

대화를 하면, 대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만 주저리 주저리 숨차게 떠들어 대곤 합니다. 이런 사람이 아이들을 앞에 놓고 주입식 교육과정을 수업해야 한다면. 안봐도 훤하시겠죠? 제가 그랬습니다, 진도를 위해, 성적을 위해, 하나라도 더 말하려고 숨차게 떠들기만 했죠.

그러나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학교나 학원에 매인 몸이라면, 아마도 이 틀을 벗어나기 힘들긴 할 것입니다. 상급 학교로 갈수록 더 심하겠죠. 그래서 수업을 하면서도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불쌍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이게 제 맘의 허영이고, 사치나 교만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랬습니다.

저에게 해주는 말이라 생각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책에서 탈의 친구인 ‘나임’ 에게 NGO 회원이 해주는 말이죠. 담아두고 싶은 말이기에 옮겨 적어 봅니다.

[파올로가 이어서 말했어. “네가 보다시피 우리가 분쟁을 멎게 할 수는 없어. 그렇다고 모두에게 돈을 나눠줄 수도 없고. 하지만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들 속에 있는 상처를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 상처들이 나아질 수도 있겠지. 그토록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스스로 더 강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거야.” 윌리가 말했어. “특히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이 각자의 하나의 개체로 존재한다는 걸, 그들이 공통된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닮은 꼴인 익명의 존재가 아니란 걸 인식하는 거야. 그 사람들 각자는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니까.”]


Ⅲ. 마무리

픽션인줄 모르고 집어 든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세계사의 흐름에 대해서나, 이-팔 간의 대립구도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책은 아니지만, 전체로서 취급되는 개인이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통해, 새싹을 보면서 열매 맺는 나무를 꿈꾸게 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lawcher.tistory.com2007-11-11T08:54:340.3810
Posted by 로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박힌 아이들"

이 글귀는 본문에 나오는 한 철학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말 그대로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가난과 기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아이들을 표현한 말이다.

이 책은 "기아"라는 인류공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지은이가 자신의 아이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글을 썼기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분량도 많지 않고,
주제와 맞아 떨어지듯, 재생종이의 질감도 좋다.

그러나 읽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 온다.
책을 읽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부조리, 신자유주의, 거대곡물기업, 곡물시장, 금융자본, 미국정부 그리고 사막화, 기상이변, 내전과 민족분쟁, 종교분쟁, 식민지농업, 등등에 맞서서 지금 책줄이나 읽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는가?

지은이는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그러나, 거시적, 구조적인 사회악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서문에서 지은이는 희망에 대해 말을 한다
 
"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은 서서히 변화하는 공공의식에 있다."

관심을 갖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겠지만,
이것 만으로는 저자가 기아에 대한 학교 교육의 부재에 대해 말하듯이


"학생들은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애를 가지고 졸업할 뿐, 기아를 초래하는 구체적인 원인과 그 끔찍 한 결과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를 못한단다"

이런 상황밖에 더 연출되겠는가?

안타깝게도 이 책은 무지한 나를 깨워주기는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 가져오는 가슴답답함과 무력함외에 희망을 던져주지는 못한다.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적용은 '희망의 밥상', 이나 '라다크에서 배운다' 등 다른 책들을 참고해야 할 듯 하다. 아니면 Anti 다보스 포럼 시위에 몸을 던지던지....

PS. 책 뒷부분 주경복 교수의 '신자유주의를 말한다'를 읽고서 책 읽은 후에, 어두웠던 마음이 다소 밝아 졌다.

PS2 : 쓰고 보니, 투정부리는 글이 되고 말았다.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아보고, 공부해야 할 시간에 투정이나 부리다니..... 창피해서 글을 지우려다가, 이런 부족한 모습도 지금의 내 모습이기에 지우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시는 지혜로운 독자분들은 해답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나처럼 투정만 일삼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http://lawcher.tistory.com2007-11-05T09:08:470.3610
Posted by 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