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천재 이제석 - 이제석

[ 나는 내 나라에서는 새는 바가지였다. 대학을 수석 졸업했는데도 오라는 회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 광고쟁이가 광고만 잘하면 되지 왜 토익 성적이 필요하고, 왜 명문대 간판이 필요한 걸까? 창의력을 이런 잣대로 잴 수 있는가? ...<중략> 하지만 나는 내 나라 밖에서는 새는 바가지가 아니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


책의 앞날개에 써 있는 '루저' 발언과 마찬가지로 프롤로그에 있는 '난 새는 바가지였다.'는 고백에는 지금의 성공과 뚜렷한 소신에서 오는 당당함이 묻어 있습니다.

제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저는 이런 반골(?)들이 좋습니다.
어려서부터 주목 받아온 엘리트 보다 잡풀처럼 억세게 자란 인물들에게 호감이 갑니다. 예를 들면 대학진학이나 프로입단이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하고 우뚝 선 박지성 선수와 같은 인물이 제게는 영웅입니다.

이 책은 당당한 '나는 잡풀이로소이다.'는 고백과 함께 저만의 소영웅들이 겪는 고난과 시련의 극복으로 시작합니다. 계명대를 수석졸업 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해 동네 간판쟁이로 살다가 어떤 계기로 유학을 결심하게 됐는지 뉴욕행 편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곳에서는 어떻게 지냈는지, 등 말이죠.
그리고 각종 수상경력과 광고회사에서의 경력, 등의 성공스토리로 이어집니다.

마무리는요?
아이디어는 빈약한 채 물량을 통한 반복 세뇌만 성행하는 광고, 돈지랄로 느껴지는 광고에 반성적 회의를 하기 시작해서 공익광고로 눈을 돌린다거나, 광고주로부터 지시를 받지 않고 먼저 제작한 광고를 파는 방식의 광고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잡풀영웅의 책인데다가, 기발한 광고 사진까지 곁들여져 있어서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저에게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아래의 내용입니다.

[ 6개월이 되자 5명만 살아남았다. 그 과정에서 빡세게 트레이닝 되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트레이닝이기도 했다. 이렇게 살아남은 후배들은 국제광고 공모전에서 1등도 하고 뉴욕, 런던, 도쿄의 광고회사에서 자리도 잡았다. 내가 졸업한 이후에도 학과의 상위 5퍼센트를 차지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은 이제석 광고연구소와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든 서로 뜻만 맞으면 힘을 합쳐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동료가 되었다.
 p. 206 동아리 모집 ]


저 정도 실력과 유명세로도 맘과 뜻을 모아서 함께 하고 싶은 일을 할 사람을 얻는 것이 저 정도로 힘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 역시 준비하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우선 나중에라도 함께 할 사람들과 모으게 될 뜻을 세우는 것이 먼저 일지도 모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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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 유시민

노무현과 조선일보가 어떻게 싸움을 시작했고, 조선일보의 보도가 어떤 식이었는지를 설명하는 책 입니다. 설명 방식은 조선일보와 그 외 언론의 보도 비교, 그리고 발언 당사자인 노무현의 기록과의 비교 입니다.

아는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호화요트 부터 시작해서 '노무현의 깽판 발언과 비교되는 이회창의 빠순이 발언'에 이르기까지 언론 별로 다루는 태도와 관점이 다름을 말이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정치에 이성 뿐 아니라 신념과 이상이 같이 있기에 신앙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독선적 신앙이 돼 버린 정치관은 이미 다른 견해를 사이비와 사탄으로 규정하나 봅니다. 그러니 다른 견해가 귀에 들어올 리가, 다른 생각이 머리와 가슴에 파고들 여지가 없겠죠. 뭐 다른 사람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제 얘기입니다. 저 스스로 조심하자는 얘기이고요.

그래서 이 책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일보 '박래부 논설위원'의 칼럼을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2002년 7월 10일 <위악은 위선보다 안전하다>
-'박래부' 칼럼의 일부 발췌

[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독특한 어법으로 남북관계를 역설하다가 혼이 났다. 정당 연설회에서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고 말했다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것이다.

언론들은 그의 비속어 사용을 장기간 강도 높고 집요하게 비판했다. "대통령 후보가 뒷골목 말을 해서야......" 하는 식의, 이성보다는 감성을 앞세운 비판일수록 대중적 설득력을 갖는다. 그 말은 사실 민망하고 부적절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격식을 따지는 형식상의 비판이 남북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말의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강조법적 수사학을 위악적으로 동원한 그 말은 남북관계의 성공에 대한 의지와 집념, 진정성을 강조해서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서해교전 후의 상황을 보면, 그가 우려한 대로 남북의 평화구조는 허약하기 이를 데 없고 순식간에 긴장의 살얼음이 깔린다. 위험하기 때문에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위악이 아니라 위선이다. 정치인에게는 품격으로 포장된 미사여구보다 창조적인 사고와 실천의지가 더 값지다. 점잖은 화법으로 치면 최근 구설수에 오른 한 국회의원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주간한국'에서 "우리나라도 명문학교를 나온, 좋은 가문 출신의, 훌륭한 경력을 지닌 사람 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장욱진은 도저한 정신의 자유를 추구했던 화가다. 세상에 대한 통찰력도 탁월했던 그는 겸손-교만-죄의 관계를 이렇게 갈파하고 있다. "나는 심플하다. 때문에 겸손보다는 교만이 좋고 격식보다는 소탈이 좋다. 적어도 교만은 겸손보다 덜 위험하며, 죄를 만들 수 있는 소지가 없기 때문에 소탈은 쓸데없는 예의나 격식이 없어서 좋은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라는 다정한 말이 얼마나 지역감정을 조장하며, '북한 퍼주기'라는 말은 어떻게 남북관계를 왜곡하고 있는가. 거친 비속어보다 비수를 품격으로 은폐한 말이 더 위험하다. 우리는 위장된 말로 반민주적 편견을 조장하거나, 평화 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

교언으로 냉전시대로의 복귀를 속삭여서도 안 된다. 이성적 언어로 평화를 얘기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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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강연회 - 대한민국 진보의 미래

시간 : 2010. 10. 21. 목. 저녁 7시
장소 : 청주 교육대학 강당
주제 : 대한민국 진보의 미래

청주교대 총학에서 초청 강연회의 강연자로 유시민씨를 모셨다는 소식에 참석했습니다. 서울에 살 때는 여러 강연회가 있어도 이런 저런 핑계와 이유로 참석치 않았으면서 지방에 살게 되니 강연회가 적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겨우 저녁 7시 시간에 맞춰 도착했습니다. 강당 입구부터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더라고요. 강연 후에 얼마나 사람들이 오셨을까하고 좌석수를 세어 보니 가로 27석(9+9+9)에 세로 22 석이 더라고요 총 좌석수는 594석, 좌석이 가득 차고 좌우측 통로에 앉은 분들과 좌우측 통로에 서 계신 분들 그리고 저처럼 좌석 뒤에 서 계셨던 분들을 합하면 800 명이 넘는 청중이 아닐까 싶습니다. 덕분에 2시간 동안 서서 듣느라 제 다리는 아직도 "일찍 가지 그랬어!"를 외칩니다.

=표 아래에는 제가 서서 메모한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해 봅니다.
제가 잘못 들은 부분이 있거나, 잘 못 정리된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첨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시민씨 '인하대 강연'의 내용과 예시와 사례가 조금씩 다를 뿐 같은 내용이니 참고하세요.

==============================================================================
1. 진보의 개념

진보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요인들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물질의 결핍 둘째, 노예제도와 같은 불합리한 제도 셋째, 가부장제나 두발규제와 같은 낡은 의식이런 장애들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견해의 출처는 '이남곡'선생의 '진보를 연찬하다'는 책이라고 밝힘

2. 진보정치란

진보정치란 국가권력의 작용에 영향을 미쳐 인간 자유의 구속요인들로부터 인간의 자유를 회복시키는 정치.

< 정체성이 명확한 진보 정당과 진보 지식인들 사이에서 소위 '진보'에 대한 논란이 많은가 봅니다. 명확한 정체성과 구별되는 정책과 정강은 있어야 마땅한 것이지만,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의 정치인들 처럼 '말먼지'로 소위 진보세력들이 자멸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 역시 제 짧은 생각입니다. - 로처생각 - >

3. 국가란

(1) 홉스의 전체주의적 국가관

(2) 애덤스미스의 야경국가 - 시장 보수형 국가관

(3) 마르크스의 도구적 국가관 - 국가는 계급지배의 도구

(4) 유시민씨 생각 - 국가는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는 도구(미덕국가, 선행국가)
                    사람을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켜 공동선을 이뤄나가는 국가
                    를 꿈꾼다.

4. 진보의 미래는 연대에 있다

막스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 내용을 예시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조화를 얘기. 유시민씨 본인은 '진보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한다고 말 함.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승리를 위해서는 야당의 연대가 절실하다는 의미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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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 시간 가량의 강연과 30여분간의 질의응답, 그리고 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이미 인터넷에서 같은 내용의 '인하대 강연'을 들었기 때문인지, 강연 주제와 내용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성실히 강연해 주신 유시민씨와 반응 좋은 청중들과 함께 한 그 장소, 그 시간의 의미는 인터넷 청강으로는 느끼기 힘든 점이겠죠. 특히 '양조위 닮으셨어요.'라는 질문(?)에 "김국진씨나 이용표 선수를 닮았다고 얘기하시는 분도 있다."는 답변에 가장 많은 청중들이 웃었습니다. 그리고 유시민씨 딸의 교육방법에 대한 질의에 갑자기 큰 웃음을 터뜨리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정치인이기 전에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구나 싶었습니다.

내용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좋은 강연이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아마도 2012년의 선거에서 유시민씨가 꿈꾸는 야당연대가 동상이몽(同床異夢)에 그칠지 어느 대학 총학 선본의 멋진 구호처럼 이상동몽(異床同夢)이 될 지가, 그들이 연대를 하는 과정과 함께 가장 흥미있고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부분이 되겠죠.

좋은 강연자리 마련해 준 청주교대 총학에게 감사드리며, 적지 않은 나이에 긴 시간 열강해주신 유시민씨에게 박수드립니다. 그리고 강연 시작 전에 교대 동아리 학생들의 공연 중에 래퍼 학생의 무대매너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P.S> 유시민씨 도봉구 강연 동영상 주소 입니다. http://usimin.net/movie/915480

Posted by 로처

천년의 금서 - 김진명 작가 강연회

장소 : 충북 중앙도서관 4층 강당
시간 : 2010년 9월 29일 수요일 오전 10시
주제 : 우리 국호 한(韓)의 유래

미리 공지된 시간을 한 발 늦어 도착한 강당에는 작가의 인기를 보여주듯 이미 자리가 거의 차 있었습니다. 맨 끝에 위치한 의자가 하나 비었기에 앉아서 땀을 닦으며 두리번거렸는데 다행스레 아직 사회자가 작가 소개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아래에는 김진명 작가의 강연 <우리 국호 한(韓)의 유래>에 대해 저의 단출한 기억과 메모를 바탕으로 이곳에 기록하고자 합니다. 열심히 듣고 기록하려고 했으나 많은 것을 일목요연하게 담아두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잘 못 들었을 수도 있음을 미리 말씀드리고 양해 구합니다. 다르게 들으신 분들은 댓글이나 트랙백으로 보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한(韓)의 유래에 대한 궁금증

작가는 한(韓)에 대한 궁금증을 먼저 밝혔습니다.

왜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인가?
중국은 중화를 자처함으로 중국이라 하는데 한국에서 한(韓)은 무슨 의미인가?
이런 질문에 작가 본인 뿐 아니라 누구에게서도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고 하시네요.

2. 한(韓)의 유래 더듬어 찾기

김진명 작가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한(韓)을 찾아봤다고 하시네요.

(1) 한(韓)이 적힌 문헌 찾기

(2) 청주 한씨 종친회 방문
(3) 고대의 삼한과의 관련성
(4) 고종실록 - '삼한을 잇는다.'
여기서 작가의 의문은
"왜 고종은 삼한을 잇는다고 하였을까?"
"한은 한반도 남부에 위치한 작은 부족국가에 불과하지 않은가?"
"실제 한은 거대국가가 아니었을까?" 이었다고 합니다.

3. 시경에서 한(韓)을 찾았다

시경에 '한후'와 '주나라 왕'과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시네요.

그 한후의 기록은 춘추전국 시대의 한(韓)나라 보다  500여년이 앞선다고 하시고요.
"과연 '한후'와 우리나라와를 연결할 수 있는 관련 논리는?"
- 한(漢)나라 '왕부'의 '잠부론'에 성씨에 관한 글이 있다.
- 시경에 나오는 '한후'는 연나라 동쪽에 위치한다.
- 연의 동쪽 북만주에는 여러 민족이 살아간다.
- 차츰 그 서쪽에서도 한씨 성을 쓰기 시작했다.
- 그 후손은 '위만'에게 망하여 바다를 건너갔다.

4. 천문학자의 근거

박창범 박사의 '오성취루'를 근거로 제시하십니다.

더불어 중국의 '동북공정'과 '요하문명론'에 대해 말씀하셨으나 자세한 기록은 하지 못했습니다.

5. 강연후기와 '천년의 금서'

강연에서 제가 느낀 점은 세 가지 입니다.

첫째, 문제의식 입니다.

작가는 한(韓)의 유래를 몰랐고 이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한(韓)의 유래는 모르지만, 그냥 저냥 넘어가는 것이죠. "아! 저래서 작가구나!" 싶었습니다. 지나친 비약일까요?

둘째, 소설의 소재 입니다.

역사적 근거로는 부족한 '환단고기'이지만 소설의 소재로는 꽤나 매력적입니다.
저 역시 '천년의 금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셋째, '역사인가 소설인가?' 입니다.

어떻게 보면 작가의 소설에 대한 강연이고, 달리 보면 역사 강연인 듯도 했습니다.
나중에 '환단고기'나 작가의 책을 읽고 '트로이 전설'을 역사로 바꾼 '하인리히'와 같은 사람이 나온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 '환단고기'는 근거가 미약한 '전설' 이하의 영역 입니다.
이 마지막 느낀 점이 명쾌하지 못하고, 가슴에 짐이 됩니다.
제가 환단고기 뿐 아니라 역사에 정통하지 못한 것이 이유이고, '소설의 역사적 고증은 어디까지일까?', '소설은 역사에 얼마나 부합해야 하나?'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음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좋은 강연을 해주신 김진명 작가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좋은 강연회가 될 수 있게 매끄러운 진행에 애써주신 충북중앙도서관 직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로처

제리 - 김혜나

"가야할 길이야 있겠지. 그런데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도 없어." (p. 47)

"누군가 내 옆에 좀 있어줬으면.......(p. 79 극 중 나의 꿈)


연예인이 되고 싶은데 자꾸 빗나가기만 하는 호빠 선수 '제리'와 유일한 꿈이 누군가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나'가 등장 합니다. 그 둘은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곤궁한 것도 아닙니다. 당장 내일을 알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병을 앓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도 그 둘의 이야기가 이렇게 절망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둘은 꿈이 없습니다.

어쩌면 꿈이 있는데, 그것으로 가는 길이 막혀있거나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꿈만 없을 뿐 아니라 안식도 없습니다. 
집도, 학교도, 술자리도, 여관방도 어디 하나 맘 편히 쉴 수 있는 곳조차 없네요. 현실에서 없을 수도 있는 누군가가 옆에만 있어준다면 그것을 최고의 안식처로 삼으려 하는데, 그게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차라리 실없어 보이지만 '시인'이 되고 싶노라고 말하는 '미주'가 낫습니다.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살아보겠노라는 '여령언니'의 꿈도 그 둘에 비하면 행복해 보일 지경이니 말이죠.

스스로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꿈을 찾지 못하는 상황과, 꿈을 명확히 알더라도

가는 길이 꽉 막혀 있다면 개인이나 사회나 건강한 것은 아닐 테죠. '나'를 응원해 봅니다. 조금은 냉소를 버리고, 부정적 시선도 거두고, 손으로 더듬으며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좀 걸어가야죠. 앞인 줄 알고 갔는데 그게 뒤나 옆일지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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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처

1.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말콤 글래드웰의 전작 <블링크>를 딱 한 번 보았을 뿐이지만, 그의 글쓰기는 참 매력적입니다. 재미있는 사례와 연구라는 구슬을 말콤처럼 꿰어서 풀어내는 능력은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이 책 <아웃라이어>를 선택한 이유는 성공에 대한 어떤 가르침을 듣기 위한 것보다 그의 글 쓰는 능력의 비밀을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다 읽은 후에는 이 재미있는 책에 빠져서, 처음의 의도는 간 데 없고 저에게 남은 몇 가지 생각의 조각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2. 성공 = 개인의 능력(소질, 노력) + 외부의 환경(기회, 시기, 문화, 가정환경, 등)

제가 파악한 이 책의 주제는 위에 보여드린 소제목과 같습니다.
성공은 IQ나 소질, 등 타고난 개인의 자질에 노력을 더한 개인의 능력에 달려있지만, 외부의 환경이 그에 못지 않다는 것이 주제 입니다. 이것은 좀 완곡한 표현이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하늘에 닿더라도,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성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주제일 것입니다. 아래는 책 내용의 요약이라 말을 짧게 했습니다.

(1) 마태복음 효과
- 생일이 빠른 하키선수들의 성공
- 결과적으로 배제 되었을지 모르는 생일이 늦은 선수들의 발굴

 "우리는 사람들에게 너무 성급하게 실패의 딱지를 붙인다. 또한 우리는 성공한 사람은 지나치게 추앙하는 반면, 실패한 이들은 가혹하게 내버린다. 성공하지 못한 이들에게 불리한 잣대를 들이댔으면서도 말이다. 우리는 누가 성공하고 누가 그렇지 못할지를 결정하는 우리의 역할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쉽게 간과해버린다."  (p. 47)


(2) 일만 시간의 법칙
- 빌게이츠, 비틀즈의 노력의 시간

(3) 위기에 빠진 천재들
- 터마이터들의 실패
 - IQ 195의 크리스 랭건이 150의 아인슈타인보다 30% 더 똑똑한 것은 아니다.

(4) 랭건과 오펜하이머의 결정적 차이
-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권리를 누리는 사람에 속하는 오펜하이머
- 오펜하이머는는 랭건과 계층과, 가정교육과, 문화가 달랐고 실용지능에서 차이를 보였다.
- 메릴랜드 대학의 사회학자 아네트 라루의 연구
- 중산층 부모의 '집중양육(Concerted cultivation)과 가난한 부모의 '자연적인 성장을 통한 성취(Accomplishment of natural growth)'중 어느 한 쪽이 더 낫다는 도덕적 판단은 유보. 그러나 주목할 만한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 중산층 부모는 대개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함께 이유를 찾아낸다. 단순히 명령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함께 협상하며 어른에게 질문하기를 바란다. 또한 부유한 부모는 자녀가 학교에서 잘하지 못하면 선생을 찾아가 상담을 하며 아이들의 문제에 깊이 개입한다. (중간생략) 반면 가난한 부모는 권위 앞에서 겁을 먹는다. 그들은 수동적으로 반응하며 뒤편에 물러서 있다. (p. 126)]

[ 라루에 따르면 가난한 계층의 아이들은 이렇게 대응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은 눈을 내리깔고 질문에 대해서만 조용한 목소리로 고분고분 대답한다. 하지만 알렉스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간생략)

이것은 문화적인 요소이다. 어린 시절부터 알렉스의 부모가 교양 있는 방식으로 점잖게 설득하는 방법, 거절하는 방법, 격려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고 진료를 받는 경우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행연습까지 시켰기 때문에 알렉스는 그런 기술을 습득했을 뿐이다.

라루는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의 장점 중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이것이라고 주장한다. 알렉스가 케이티 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이유는 부유한 덕분에 좋은 학교에 다니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대사회에 적합한 태도와 자세를 익히기 때문이다. (p.127~131) ]


(5) 조셉 플롬에게 배우는 세 가지 교훈
- 적대적 M&A의 활성화와 시선의 변화에 기인한 조셉 플롬의 성공
- 유태인 이민자 루이스와 레기나 부부의 앞치마 장사의 성공

(6) 켄터키주 할란의 미스터리
- 남자의 명예와 복수를 중요시하는 문화를 갖는 마을의 살인사건

(7) 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

- 대한항공 괌 추락사건을 예로 든 PDI(Power Distance Index)
- 완곡한 어법, 돌려 말하기를 하는 한국문화와 위급상황

(8) 아시아인이 수학을 더 잘하는 이유
- 쌀농사 문화권과 숫자에 대한 발음의 차이가 성공의 요인 중 하나

(9) 마리타에게 찾아온 놀라운 기회

- 키프(KIPP) 아카데미라는 실험적인 공립학교

"만약 백만 명의 소년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오늘날 얼마나 더 많은 마이크로소프트가 활약하고 있을까?" (p. 307)


<3> 자녀교육 지침서 - 더 많은 기회를 주자

이 책을 읽은 후의 느낌은 '자녀 교육 지침서' 입니다.
알라딘 리뷰 중에 어느 분이 이런 제목을 쓰셨더라고요. 저랑 같은 생각을 하셨나봐요.

평가가 있을 수밖에 없는 학교에서 단지 시험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분야에까지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한 학생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아무리 위로를 해줘도 성적 외에 큰 산이 보이지 않는 어린 학생의 다친 맘에는 제 위로가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학교나 가정이 '실패학습의 장'이나 '자존감 삭감의 장'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한 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가능성을 계발하며, 꿈을 함께 모색해나가는 그런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당연한 소리를 했네요. 개인적으로는 미시건대 로스쿨의 '적극적 차별철폐'제도와 뉴욕의 키프아카데미에 끌립니다. 일시적인 호기심이 과연 공부로 이어질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0^

Posted by 로처

촐라체 - 박범신

읽을 것이 없어서 도서관 서가를 돌아다니다가, 최근에 떠들썩했던 책이기에 집어 왔습니다. 말이 많았던 책에 대한 이상한 거부감을 심심함이 이겨낸 결과죠. 이 책의 앞에 '작가의 말'에 개인적인 고민과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서 "두고 보자!"는 심산으로 읽었어요.

[ 감히 고백하거니와, 나는 '존재의 나팔소리'에 대해 썼고 '시간'에 대해 썼으며, 무엇보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 대해, 불멸에 대해 썼다.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현대인에게, 또 자본주의적 안락에 기대어 너무 쉽게 '꿈'을 포기하는 젊은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자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것은 숨기고 싶지 않다. 소망대로 잘 완성 됐는지는 물론 단정할 수 없다. 소설이란 독자와 소통의 길을 내는 것이면서 왕왕 독자의 '오해'를 만드는 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p. 10 중에서> ]

작가가 '감히'라는 단어를 앞에 두고 고백한 것처럼 이 정도면 '인생'의 모든 것을 다루었노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처럼 저 역시 깊이 있고 연속적이진 않지만 '꿈'과 '정체성'과 '존재의 나팔소리'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니, 이 책을 읽어봤습니다.

소통

박상민과 정선배는 잡음 섞인 무전기를 통해서 하고 싶은 외마디를 나눕니다.
"그 놈 중 되겠다고......"와 "도장 찍었어요." 하영교의 말대로 웃기는 화법입니다.
함께 먹고, 마시고, 잠자면서 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술기운 빌듯, 무전기 잡음에 섞어서 얘기를 합니다. 일상에서는 이것저것 눈치 볼 것도, 생각해야 할 것도 많지만 그것이 점점 사라지는 상황의 힘을 빌어서 겨우 통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의 절박함과 단순한 상황

복잡한 집안 내력만큼이나 순탄치 못한 인생을 살아가는 두 형제.
하영교와 박상민 형제는 맘에 담고도 풀어두지 못했던 응어리들을 하나 둘 풀어냅니다. 치고받고, 악을 쓰고 욕도 합니다. 비박의 혹독함을 느끼는 신음소리와 상상,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맺힌 것이 풀립니다.
둘 만 있는 정적의 장소, 살아야 하는 이유 외에는 배제된 곳이기에 막혔던 물길이 다시 흐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에 어울리는 시가 책의 끝부분에 있어서 인용해 봐요.

[ 눈물짓는 슬픔에 찬 세상을 떠나서
  고독한 동굴을 네 아버지로 삼고
  정적을 네 낙원으로 만들라
  사고(思考)를 다스리는 사고가 기운찬 말이고
  네 몸이 신들로 가득 찬 너의 사원이니
  끊임없는 헌신이 너의 최선의 약이 되게 하라
 
                     - 밀라레파 - <p.331 중에서> ]



다시 현실로

책의 구절들 중에 맘에 드는 구절이 있습니다.

'정상은 모든 길이 시작되는 곳이고, 모든 선이 모여드는 곳.'

그 곳에서 응어리들이 다 풀렸는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촐라체를 넘었고, 다시 또 현실에서 시작입니다. 정선생과 박상민과 하영교는 무전기의 잡음 없이 얘기하기 힘든 일을 또 겪을지도 모르고, 묻고 싶은 것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응어리를 다시 키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소설 속 인물의 삶을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제가 가진 응어리가 있다면 풀고, 가슴 따뜻해지는 사랑도 하며, 존재의 나팔을 불어야죠. 아직 넘어야 할 정상이 무엇인지 푯대도 알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입니다만, 촐라체에 선 두 형제들처럼 정적 안에서 상황을 좀 단순화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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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아간다는 것) - 위화

우리 마을에 처음으로 생긴 공립도서관, 그 곳 강당에서 접이식 간이의자 백여 개를 놓고 한 영화상연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영화 제목이 '인생'. 까까머리 코흘리개 중학생이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인생'이란 제목의 영화를 보기위해 거기에 앉아있었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영화를 접하기 어려운 때라, 공짜로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겠죠.

영화 곳곳에 나오는 중국 근현대사를 몰라도(지금도 잘 모릅니다.) 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추억은, 불편한 접이식 의자에 앉아서 같이 영화를 보던 사람들과 같이 탄식하고, 웃으면서 호흡을 같이 한 기억입니다.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과장으로 범벅이 되는 것일지는 몰라도, 그 때의 추억은 제 머릿속에는 영화 '시네마 천국'의 마을극장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머리가 굵어진 후, 우연히 그 영화의 원작이 책이란 것을 알았어요.
작가는 '위화(여화)' 책 제목은 '인생(살아간다는 것)' 입니다. 영화와 책은 조금씩은 다릅니다. 아마도 그걸 각색이라고 하나 봅니다.

책이건 영화건 본론을 얘기해야죠. 너무 사담이 길었습니다.
처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제법 있어서, 도련님 소리를 듣는 철부지가 있습니다. 이름은 '푸구'. 결혼도 해서 딸까지 하나 있는 이 녀석은, 가족의 만류에도 도박과 기생에 빠져 삽니다. 결국 도박으로 모든 것을 잃습니다. 집도, 땅도, 도련님이라는 지위도, 곧이어 아버지, 어머니도 말이죠.

그나마 다행인 점은 푸구가 젊다는 것과 그의 아내 '자전'은 착하고 지혜롭다는 것 입니다.
'푸구'와 '자전' 그리고 사랑하는 딸 '펑샤'와 막내아들 '유칭' 이들이 가족이라는 것도 눈물나게 다행입니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풀처럼 사는 사람들. 이들의 행복을 빌어주실래요? 저도 여러분의 행복을 빌어드리겠습니다.


아래는 그냥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1. 나만 모르는 것

그가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사실을 주위가 다 알아도 정작 본인은 모릅니다.
'반만 잃었을 때 알아차렸다면.', '집만이라도 살렸다면.' 싶지만, 푸구는 파산을 할 때까지 알지 못합니다. 매일같이 외상장부에 지장을 찍으면서도, 아내 '자전'이 임신한 몸으로 걸어와서 하소연을 해도 알지 못합니다.
답답합니다. 책속으로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서 멱살을 잡고 한 대 때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책 밖으로 나와 봤는데 저 역시 뭔가를 계속 잃고 있네요. 시간, 금전,......을 말입니다. '푸구'와 같은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 잃고 있는 것과 버려야 할 것 그리고 새출발의 기초자산

푸구는 재산과 가족을 잃고 있었고, 도박과 기생을 버려야 했습니다.
책 속의 푸구 인생과 때때로 들려오는 다른 사람의 인생은 훤히 보이는 것 같은데, 막상 자신의 인생은 잘 모르겠습니다. 잃고 있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알 것도 같으면서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끼적여 보면 버려야 할 것은 '같지 않은 학벌'과 '자존심', '주위의 시선이나 평가', '체면' 이런 것이 있네요.

푸구는 그림자극 소품(영화)과 농지(책),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로 다시 살아갑니다. 저는 무엇으로 다시 출발해야 할까요? 이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묵적도, 방향도......

써놓고 보니 일기인지 리뷰인지........
신세한탄을 공개하는 것도 같습니다만, 신세한탄이 아니라 반성하고자 함이니 좋게 봐주세요. 그리고 '무슨 짓을 하던지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이 책 머릿말에서 작가가 한 말에 영향을 받아서 제가 한 동안 읊조리고 다녔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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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 김훈

1. 관계, 사연 그리고 사람

문정수는 기자입니다.
많은 사건이나 사고를 경험합니다. 취재를 하며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수록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을수록 그들의 사연을 알아갑니다. 사람을 닮은 사연들은 각자의 색을 갖고 명멸합니다. 간척되어 마르는 해망지역 못의 물고기처럼 살아 꿈틀거리고 모두가 그냥 넘길 수 없을 만큼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그 사연들을 묻어야 합니다. 신문이 브리태니커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하니까요. 기사가 되는 것은 사연을 배제한 무채색의 사실들 입니다. 이런 무채색의 사연들은 일기예보 보다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짧은 탄식이나 동정의 대상이 될 뿐이죠.

임금님 귀의 비밀을 알아버린 사람의 심정으로 문정수는 체한 듯 걸려있는 사연들을 노목희에게 이야기하면서 풀어냅니다. 묻어도 자꾸 살아나는 사연들을 노목희에게 방류합니다.
문정수에게 노목희는 대밭이기도 하고, 해망의 바다이기도 합니다.

노목희는 미대를 졸업한 교사였고 출판사 직원입니다.
대나무밭으로서의 일상도 좋아하는 노목희는 문정수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문정수가 그녀의 대밭에서 위안을 얻는 것처럼, 그녀도 문정수의 주절거림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그녀도 변화하는 세상의 빛과 색을 그림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주저함이 있어서인가 봅니다. 만물의 변화를 단정 짓지 못하는 그녀의 주저함은 어쩌면 넘치는 사연을 다 품지 못해 괴로워하는 문정수의 그 어떤 면모와 닮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장철수
그는 불만과 개혁, 운동이라는 색으로 살아가는 사람인데 색을 잃고 맙니다.
어쩌면 색을 잃은 것이 아니라 신문에서 색을 빼버린 사람들 이야기처럼 색이 빠져 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세 사람 외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오금자, 그녀의 아들, 소방관 박옥출, 제3자와 그의 어머니, '남'이나 '오'처럼 성만 나오는 사람, 존속살인범, 익명의 익사자, 방미호와 방천석, 후에, 미군 공보관, 횟집마을 사람들......
관계의 밀접함에 따라 사연과 사람은 색이 있을 겁니다.
사람에 따라, 관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하는 색일 테고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명멸하는 색일 테지요.
노목희가 창야의 저수지에서 포착하지 못해 그리지 못하는 그런 빛과 색일 테고요.
문정수가 가슴에 품기에 벅차서 방류해야만 하는 사연과 사람일겁니다.

바람에 날리며 해망의 간척지를 덮는 풀씨처럼 살아도.
다른 사람들이 흑백으로 보는 삶을 살아도.
한 줄짜리 기사거리도 못되는 삶을 살아도.
바다를 그리며 머리가 깨지도록 수조를 들이받는 바다사자처럼 지향점을 갖고 살고 싶네요.
혐오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색깔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색 자주 변하고, 금세 사라질지라도 말이죠.

2. 맑게 소외된 자리

책을 읽고 난 후 감상은 "허무"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허탈합니다.
그 많은 사연들은 숫자로만 기록되는 익명의 사망자들처럼 덤덤하고요, 명멸하는 사람들의 삶은 기사처럼 감흥이 없습니다. 문정수는 데면데면하고, 장철수는 색을 빼버렸습니다. 그나마 노목희가 유학 가는 장면을 희망적이라고 봐야 하나요?

작가의 말에서 김훈 작가는 이렇게 말하네요.

[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 문제다. (p. 325) ]


작가의 심중에 들어가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맑게 소외된 자리'가 뜻하는 바도 알기 힘들죠.
그러나 작가가 <공무도하>같이 허무로 가득한 책을 연이어 써 낸다면 10년이 지나지 않아 확실히 '소외된 자리'를 체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의 감상을 '허무'로 받아들인 저의 개인적 잡생각일 뿐입니다.

해망 바다의 풀씨에게 허무는 없습니다.
수조 안에 갇힌 바다사자에게도 없습니다.
오금자, 박옥출, 등 많은 사람들에게 허무는 사치일겁니다.
실망이나 좌절 같은 허무와 유사한 감정은 있겠지만 허무보다 앞서는 것은 배고픔 같은 생존에의 욕구일겁니다.
오금자씨처럼, 그 아이처럼, 박옥출씨처럼일지라도, <남한산성>에서 말 먼지에 피바람이 몰아쳐도 그저 살고 죽는 사람들처럼요. 일단은 살고 봐야죠.

생각해보면 저 같은 단순한 놈의 생존을 위해서 작가는 부러 허무를 내뱉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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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명선언문(The Path) - 로리 베스 존스

비전, 처세, 희망, 긍정을 말하는 책들을 비웃습니다.
읽어봤댔자 거기서 거기인 말들로 가득합니다. 좋은 말들로 가득하고요, 다시 말하면 뻔 한 말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그런 책들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이 책은 과제이기에 읽은 책 입니다.
그렇게 차갑게 비웃으면서도 기대를 갖는 저를 봤네요.
꺼져가는 불씨에서 피는 연기만큼 희미한 기대를 갖는 저의 이중성에 당혹스럼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희미한 기대에 다시 희망을 걸면서 읽어봅니다.

첫 질문은 심심풀이 심리테스트처럼 가볍습니다.


1. 땅, 물, 바람, 그리고 불의 네 가지 요소에 대해 생각해 보라.
당신은 어떤 것과 가장 닮았는가?

2. 그 요소의 특징을 12가지 이상 나열해 보아라.

3. 이제 그 요소가 무엇을 하는지, 그것에 적용되는 12가지 이상의 행동이나 동사를 나열해 보라.

4. 당신의 이름을 채워넣어라.

(예) 나, ________는 불이다. (p. 52)



이런 재미있는 질문들로 시작해서 참 많은 질문에 답변해가면서 읽어야 합니다.
한 동안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가벼운 믿거나말거나식의 심리테스트를 받는 셈치고 한 번 읽기를 도전해 보시겠어요? 저는 지금 절반 정도 도전과제를 마친 상태랍니다.
절반을 읽은 저의 결과는 좀 이상합니다.


<사명선언문>

나의 사명은
상담소와 함께
가족을 상담하고, 관계하고, 감동시킨다.



좀 당혹스러운 결과입니다.
최근에 나누었던 대화와 최근에 읽은 책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가시밭길 아닌가요.

비전선언문은 더 황당합니다. 짧게 써 보자면,


박경리 선생님과 같은 작가가 되자.


머리 아프게 6시간여를 들여 읽고 썼는데 이렇게 사명과 비전이 들어맞질 않으니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습니다.그리고 낙담할 만한 일들의 연타를 맞고나니 더더욱 그랬습니다.
며칠 후 다시 펴보니 좋은 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제 상황과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창조적 긴장지대" 라고 들어보셨나요?
그 부분을 인용해 보여드릴게요.


[ 로버트 프릿츠는 이 과정을 '구조적 긴장의 유지'라고 칭하였다.
그는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의 바람, 즉 한 가지의 이미지만을 보려는 바람이 있다고 말한다. 앞에 얘기한 사실을 여기에 대입해보면, 우리는 현재와 미래를 통합하려는 과정에 돌입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좀 더 자주 비치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므로 '현재'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은 '현재'를 더 많이 창조해 낼 것이고, '미래'에 초점을 주로 맞추는 사람은 '미래'를 창조하기 시작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소요되는 긴장을 견디지 못한다.
만일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를 동시에 볼 때 생기는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미래의 비전을 포기해 버리게 될 것이며, 다시 현상유지에 고착될 것이다.

<중략>

사명선언문과 비전을 가진 후에 당신은 '창조적 긴장지대'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거기에는 긴장과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사명과 비전을 갖고 일할 때,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비전에 따라 살면서 무작위적이고 의미 없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창조적 긴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p. 119) ]


비전과 현실의 괴리가 클 때 비전은 내동댕이쳐집니다.
비전을 잘 모를 때 더 그렇고요, 현실이 바닥을 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비전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허황됨으로 치부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사는 저에게 딱 시의적절한
글이라 인용해 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참! 다시 살펴보니 사명선언문이나 비전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면 다시 해보라는군요.
잘못된 사명선언문이 될지라도 시도조차 않는 것보다는 지침이 될만하니 시도해보고, 어울린다 싶으면 유의어를 찾아가면서 확장도 해보라는군요.

저는 머리가 지끈거려 일단은 덮어두었습니다.
다시 펼쳐볼지, 비전을 찾아볼지,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장은 더 하기 싫은 일을 피하기 위해, 덜 하기 싫은 일을 찾아나서야 하는 처지입니다.
비전은 너무나 희미하고, 더 하기 싫은 일은 비전보다 명확하고 가깝거든요.

Posted by 로처

아빠, 제발 잡히지 마 - 이란주

"내 코가 석자인데........."

대화가 어려운 요즘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고 사는 것이 녹록치 않은 것이 이유입니다.
만나서 하는 얘기들은 스포츠, 영화, 책, 등 남들의 얘기로 겉돌고, 서로의 삶에 대해서는 묻기도 불편하고 듣기도 불편합니다. 간혹 얘기를 시도하다가도 위의 말로 급히 마무리 합니다.

이 책 <아빠, 제발 잡히지 마>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이나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읽고 난 다음엔 할 말이 없네요. 예전에 김용출씨가 쓴 <독일 아리랑>이라는 책을 먹먹한 가슴으로 읽어놓고 리뷰를 쓰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고달픈 삶과 투쟁, 그리고 불과 한 세대 전에 파독 광부들의 비슷한 삶에서 슬픔이나 연민을 느끼고 거기서 얻은 감동으로 다짐도 해 보지만 저는 여전히 할 말을 잃었습니다.

왜냐면
저도 코가 석자거든요.
다른 이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도,
문제가 있는 제도의 개선책을 공부할 마음도,
격려와 응원을 보낼 금전의 여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여유 없는 마음은 돌이 되어 가라앉네요 무겁게.


"젠장!" 이라고 소리치고 다시 웃어봅니다.
내 코가 석자이더라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절박함과 죽음을 읽어도
그들의 삶과 이 땅의 아비들의 삶이 오버랩 되어도
떨어지고,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는 일상의 연속일지라도
계속 크게 웃고 노래하면서 살아야죠.
세상에서 제일 즐겁게

그들을 기억합니다. 연대를 잊지 않겠습니다.
저도 비전을 계속해서 찾아보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미션> 중에서 - 이렇게라도 웃어야죠~~!!>




마지막은 지금 이 땅의 아버지들의 삶과 비슷해 보이는 이주노동자들의 아픔에 대한 글을
인용함으로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리뷰는 <The Path : 기적의 사명선언문> 입니다.

[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처음에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러 떠나지만, 이주노동 기간이
길어지면서 결국 가족의 사랑을 잃고 심지어 버림받는 일까지 생긴다.
부부 관계도 소원해지고 아이들은 성장기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곁에 없다는 것이 큰 상처로 남아 부모에게 미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저씨도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곁에 있지를 못했으니, 아이들은 아버지를 돈만 벌어다 주는 존재로 알기 쉬울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가 잔소리하고 꾸중을 하면 관계는 더욱 멀어지기 마련이다. 잘살건 못살건 가족은 함께 지내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은가. 부득이 떨어져 지내야 한다면 기간을 최소한으로 단축해야 한다. (p. 141) ]


P.S  저자인 이란주 씨가 대표로 있는 단체의 블로그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happylog.naver.com/asiansori.do
Posted by 로처